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유치환은 흔히 서정주, 함형수, 오장환 등과 함께 ‘생명파(生命派)’로 분류된다. 이러한 평가는 유치환의 초기 시에만 국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첫 시집 ≪청마시초≫와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에서 유치환은 ‘생명파’다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의 여러 시집들에서는 이를 넘어서 보다 다양한 시적 추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생명파’ 하나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 넓이를 김동리는 ‘인생 시’, ‘자연 시’, ‘애국 시’라는 세 부류로 나누었다. ‘인생 시’와 ‘자연 시’라는 두 부류는 ≪청마시초≫와 ≪생명의 서≫에 관류(貫流)하는 삶과 자연과 생명에 관한 유치환의 시적 관심과 결실을 지칭하는 것이다. 초기 시에서 유치환이 치열하게 천착했던 주제는 ‘일체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 한국 문학사에서 그는 보기 드물게 남성적 풍모를 지닌 시인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그가 형이상학적 영원성에 관계하는 정신주의를 초기 시에서부터 꾸준히 지향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 시에서 이육사와 더불어 정신주의 시의 한 봉우리를 이룩한 유치환의 초기 시들은, 가혹할 만큼의 자기 수련과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해 영원성과 대결하려는 시인의 강인한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유치환의 후기 시에서 현실 참여의 시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1960년 12월에 간행된 시집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에는 4·19로부터 비롯된 유치환의 강렬한 현실 인식을 보여 주는 시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시 <안공에 포탄을 꽂은 꽃>은 4·19혁명의 촉매제였던 김주열 열사의 죽음을 시로 쓴 것이며, <종달새와 국가(國家)>에서는 부패한 행정부의 과실(過失)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화방(花房)에서>는 자유당 정권 말기 권력의 핵심에 아유구용하는 정치 모리배들의 행실을 풍자적 기법으로 골계화한 시다. 1964년 간행된 ≪미루나무와 남풍≫에 실린 <그래서 너는 시(詩)를 쓴다->에서는 궁핍하고 결여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에 대한 죄의식과 연대감이, 시인의 시 쓰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겹쳐지며 한 편의 빼어난 현실 참여시로 승화되어 있다.
형이상학적 정신주의 시와 현실 참여의 시. 이 두 가지 큰 줄기 외에 유치환의 시에는 하나의 부류가 더 있으니 그것은 연시(戀詩)다. 시집 ≪청령일기≫ 무렵부터 간간이 보이는 유치환의 연시는, 영원성과 대결하며 자신의 삶에서 회한을 남기지 않으려던 강인한 의지의 시와는 정반대로 애잔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연시는 마지막 시집인 ≪미루나무와 남풍≫까지 지속적으로 그의 시 세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유치환 시의 본질은 의지와 감성의 두 흐름으로 파악될 수 있다. 전자는 애련을 거부하는 비정의 철학이고 남성적 목소리를 갖춘 우람한 수사학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예언자적 고발과 저항으로 돌출되기도 하는 측면이며, 후자는 애련에 휩싸이는 연정의 노래이고 여성적 섬세함을 보이는 애상적 하소연이며 때로 그것은 주체할 길 없는 마음을 담은 연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의 남성적 의지가 정신주의 시와 현실 참여의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라면, 그의 여성적 감성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연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200자평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1960년대 후반까지, 36년이라는 비교적 긴 시력(詩歷)을 가지고 방대한 작품을 남긴 유치환의 대표작 78편을 소개한다. 형이상학적 정신주의 시와 현실 참여의 시, 그리고 연시(戀詩)의 세 줄기를 접할 수 있다. 강인한 남성적 의지와 섬세한 여성적 감성을 함께 구비한 작품들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지은이
유치환은 1908년 음력 7월 14일 경상남도 충무에서 아버지 유준수의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한문 교육은 이후 그의 시에서 빈번한 한자 사용의 바탕이 되었다. 이후 통영보통학교에 입학해서 1922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豊山)중학교에 입학했다. 1923년 형인 극작가 동랑(東朗) 유치진과 함께 도쿄 교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이 무렵 유치진이 주도한 토성회(土聲會)에 참여해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1926년에 한의원을 하던 부친의 사업 실패로 귀국해 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했다. 1927년 20세의 나이로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이해에 통영 지역 문인회가 간행한 ≪참새≫ 제2권 1호에 <단가(短歌)> 9편을 발표했다. 1928년 연희전문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 학원에 다녔다. 이해 10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경성 중앙보육학교 출신 안동(安東) 권씨(權氏) 재순(在順)과 결혼했다. 이 무렵 그는 일본 아나키스트 시인 다카무라 고타로, 구사노 신페이 등과 정지용의 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29년 귀국해 형 유치진과 함께 회람잡지 ≪소제부(掃除夫)≫를 발간했다. 이해에 그의 장녀 유인전이 태어났다. 1930년 유치진의 이름으로 ≪소제부 제1시집≫이 발간되었고 여기에 유치환의 시 <오월(五月)의 마음> 외 25편이 수록되었다. 1931년 24세에 시 <정적(靜寂)>을 ≪문예월간≫ 제2호에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이해에 차녀 유춘희가 태어났다.
유치환은 1932년 평양으로 이주했다. 사진관을 경영했으나 여의치 않아 폐업하고 시작(詩作)에 전념하게 되었고, 3녀 유자연이 태어났다. 1934년 다시 부산으로 이주했다. 1935년에는 화신연쇄점에 1년간 근무했다. 1937년 통영으로 이주해서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 무렵 시 동인지 ≪생리(生理)≫를 부산에서 발행했다. 1939년 12월, 32세의 나이로 첫 시집 ≪청마시초≫를 청색지사(靑色紙社)에서 간행했다. 이 첫 시집에는 <기빨> 외 53편이 수록되었다.
유치환은 1940년 3월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를 사임하고, 일제의 압박을 피해 식솔들을 거느리고 북만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농장 관리인으로 지내는 한편 정미소를 경영했다.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에 수록된 여러 시들은 대부분 이 시기 북만주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들이다. 1945년 광복 직전인 6월에 귀국해 부인은 통영 문화유치원을 운영하고 유치환은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했으며, 8월 15일 광복 이후인 10월에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1946년에는 청년문학가협회 초대 부회장에 이어 회장이 되었다. 1947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제1회 시인상을 수상했다. 이해 6월에 시집 ≪생명의 서≫를 행문사에서 간행했고 문화단체총연합회 부산지부장을 지냈다. 그는 1948년 3월 통영여자중학교를 떠나 경남 안의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1948년 8월에 시집 ≪울릉도≫, 1949년 5월에 시집 ≪청령일기≫를 행문사에서 간행했다.
유치환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로 부산으로 이주했고 문인구국대를 조직해 육군 제3사단에 종군했다. 1951년 9월에는 문예사에서 종군 시집 ≪보병과 더불어≫를, 1953년 4월에는 ≪예루살렘의 닭≫을 간행했다. 그는 1953∼1954년에 경북대학교 문리대 강사를 지냈으며 1954년 4월, 47세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피선되었다. 10월에 시집 ≪청마시집≫(시집 ≪기도가≫와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의 합본)이 문성당에서 간행되었다. 그는 1954∼1957년 대구매일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1955년에는 경남 안의중학교 교장을 사임하고 경주고등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56년 3월에는 경상북도 제1회 문인상을 수상했으며 1957년 50세의 나이로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피선되었다. 1957년 12월에 시집 ≪제구시집≫을 한국출판사에서 간행했다. 1958년 2월에는 아시아재단 자유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2월 ≪유치환 시선≫을 정음사에서 간행했다. 그리고 1959년 3월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재피선되었으며 산문집 ≪동방의 느티≫를 신구문화사에서 간행했다. 그리고 그해 9월에는 경주고등학교 교장을 사임했으며, 12월에는 자작시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를 신흥출판사에서 간행했다.
유치환은 1960년 12월에 시집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를 동서문화사에서 간행했다. 1961년 3월 경주여자중고등학교 교장에 취임했으며 1962년 7월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12월에 대구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전임되었다. 그리고 1963년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경북지부장이 되었으며, 산문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를 평화사에서 간행했고, 7월에는 경남여자고등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64년, 57세에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장이 되었고 그해 11월 시집 ≪미루나무와 남풍≫을 평화사에서 간행했으며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65년 4월에는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전임됐으며,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부산지부장을 지냈고, 11월에 시선집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를 평화사에서 간행했다.
유치환은 1967년 2월 13일 부산시 동구 좌천동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6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엮은이
배호남은 1974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이후 목포에서 중, 고등학교를 마친 후 1992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99년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 시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마쳤다. 석사 학위논문으로 <유치환의 문학관 연구-효용론적 문학관을 중심으로>(2001), 박사 학위논문으로 <정지용 시의 갈등 양상 연구>(2008), 그 밖에 논문으로 <정지용 시 연구>(2001), <상승 심리와 초극 의지의 시화(詩化)-조정권의 ‘산정묘지’ 연작을 중심으로>(2006), <김기림 “시론(詩論)” 연구>(2006), <‘오전의 시론’에 나타난 김기림 시론의 근대성 연구>(2007), <청마 유치환의 만주 체험과 문학의 상관성>(2009)이 있다. 2003년 9∼7월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및 국제캠퍼스 교양학부 강사, 2005년 가천길대학 영상문예학과 강사로 재직했다. 2008년 8월∼2010년 7월 2년간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 옌타이대학교 한국어학과에 외국인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쳤다. 현재는 목포대학교와 초당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다년간 ‘글쓰기’ 강의를 통해 한국어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을 한국 학생 및 외국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으며, ‘영화의 이해와 감상’ 강의를 통해 영상 문화와 문자 문화의 연계, 문화 콘텐츠로의 확장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대학원 과정 중에는 한국 근현대 시인들의 ‘정체성의 갈등’이라는 주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탐구했으며, 갈수록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한국 현대 시의 활로를 찾는 작업을 계획 중이다.
차례
≪靑馬詩鈔≫
박쥐
고양이
애기
旗빨
그리움
아버님
水仙花
病妻
日月
山 3
靜寂
≪生命의 書≫
歸故
春信
바위
목숨
思慕
出生記
드디어 알리라
生命의 書 一章
生命의 書 二章
해바라기 밭으로 가려오
曠野에 와서
나는 믿어 좋으랴
≪鬱陵島≫
鬱陵島
히말라야 이르기를
植木祭
≪蜻蛉日記≫
深山
蜻蛉歌
祈禱歌
老松
죽음에서
逃走에의 길
낮달
郵便局에서
그리움
≪步兵과 더불어≫
小憩
들꽃과 같이
≪예루살렘의 닭≫
하늘
니힐한 神
나비
예루살렘의 닭
靑春
≪靑馬詩集≫
黃昏에서
밤비
諸神의 座
歲月
日蝕
人民을 팔지 않을 者를!
미루나무의 노래
슬픔은 不幸이 아니다
낮 석 점
幸福
그대 설은 호산나!
모란꽃 이우는 날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기다림
저녁놀
運命에 對하여
≪第九詩集≫
休戰線에서
雅歌 三
山처럼
밤비 소리
칼을 갈라!
日沒에 서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詩人에게
안공에 포탄을 꽂은 꽃
종달새와 國家
비오 十二世
花房에서
네게 묻는다!
≪미루나무와 南風≫
동박새와 동백꽃
미루나무와 南風
鳥葬
봄 異說
나는
怒한 鐘
그래서 너는 詩를 쓴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愛憐에 물들지 않고
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億年 非情의 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生命도 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 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바위>